아리랑은 단순히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일 뿐만 아니라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 입니다. 이 민요가 구슬프게 울려퍼질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대한민국국민은 없습니다.
K팝이 세계를 주류하고 있는 요즘 우리민족에게 있어 가장 오랜 세월동안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불리워지는 노래는 바로 이 아리랑 입니다. 가요로 연극으로 또 뮤지컬로 재해석되어 ..
그리고 아리랑은 일본과 중국 뿐만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불리워졌습니다.
일본의 아리랑
유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낸 일본 엔까의 대부 고까 마사오는 아리랑을 일본 전역에 유행시켰으며 오사카에서 3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재즈하우스의 주인 이스하마 미찌르씨는 아리랑을 즐겨 연주하는 유명한 재즈연주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아리랑
재즈음악의 대부 오스카 페티포드는 한국전쟁 당시 위문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통역병이 휘파람으로 부는 아리랑을 듣게 되었고 미국으로 돌아가 그 기억을 떠올려 '아디동 블루스(Ah Dee Dong Blues)라는 곡을 제작 했습니다.
피트 시거 (Pete Seeger) 역시 아리랑에 매력에 흠뻑 빠졌던 인물로 그는 아리랑을 부르기만 할 뿐 아니라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아리랑에 대해 직접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설로 남은 미국의 흑인 재즈가수이자 피아노연주자였던 냇킹 콜(Cole, Nat King)!!
냇킹 콜 역시 '아리랑'을 사랑한 팝스타 였습니다. 1965년 내한한 그는 서울 시민회관에서 가진 공연에서 그의 히트곡들과 함께 특별히 한국 팬들을 위해 '아리랑'을 우리말로 불렀다고 합니다.
당시 냇킹콜은 '아리랑'의 구슬프고 섬세한 매력에 도취되어 '아리랑'의 앨범 취입을 기획하였으나, 귀국 직후 폐암 진단을 받고 입원 70일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 공연 자료만 남게 되었는데요.
크리에이터 남궁연이 아리랑을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 공연을 준비하던 중 냇킹콜이 부른 '아리랑'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소문 끝에 '한겨레 아리랑 연구소' 김연갑 상임이사가 소장중인 LP를 전달 받아 디지털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만약 냇킹콜이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아리랑은 세계로 뻗어 나갔을 수도 있었을 듯 하네요. 인생의 슬픔, 강함, 아름다움이 담겨있는 위대한 곡 아리랑을 사랑한 해외아티스트들 그리고 냇킹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