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 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주제는 조선 후기의 인물인 방랑시인 난고 김병연 '김삿갓' 입니다.
가게상호, 노래가사 등 수없이 많은 곳에서 흔하게 들어본 이름이지만 이분이 왜 삿갓을 쓰고 유랑을 하며 수많은 시를 남기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출생!! 김삿갓은 경기도 양주 태생의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 이름은 병연, 호는 난고 입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된 이유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글공부를 좋아하고 시 짓기를 잘하는 그는 과거 시험에 당당히 합격을 하였습니다.
당시 과제는 바로 ‘홍경래의 난’과 관련된 문제로 김삿갓은 반란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은 정가산은 '빛나는 충신'으로,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포기하고 항복해 버린 김익순을 ‘백 번 죽여도 아깝지 않은 비겁자’라고 경멸하는 글을 적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익순은 바로 자신의 조부 였습니다. 원래는 연좌제로 김삿갓 역시 참수되었어야 했으나 하인의 덕으로 화를 모면하였고 후에 사면을 받았습니다.
결국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때부터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립(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는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요
남의 집 문 앞에서 밥을 얻어먹는 서러움을 시로 쓰기도 하고, 술 한 잔 기울이며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을 시로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어렵고 힘든 삶을 보며,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시를 쓰기도 하였는데요.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아들 익균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전남 화순)에서 객사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훗날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영월에는 김삿갓 문학관이 있습니다.
입신양명을 포기하고 가진 것 없이 가난한 시인이 되어 평생 동안 백성의 벗으로 그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그들을 괴롭히는 부자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시를 쓴 김삿갓!! 오늘의 알쓸신잡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