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한국 예술 천 년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프로그램 '천상의컬렉션'에 소개 된 풍설야귀인도와 최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의 반고흐 최북 |
영조시대인 1700년대 중반의 어느 날이다. 근엄하게 의관을 갖춰 입은 양반 사대부와 행색이 초라하디 초라한 환쟁이로 보이는 사내가 큰소리로 다투고 있습니다.
"뭐야, 네 이놈이 정녕 내 그림을 못 그리겠다고? 감히 내 명령을 거절해?··· 고얀 놈 같으니라고··· 관가에 알려 곤장을 치게 할 테니 곤장을 맞기 싫으면 어서 그려라!" 양반은 욕설을 해대며 사내에게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내가 발끈 화를 내면서 "세상이 나를 깔보고 함부로 대하는구나. 이렇게 무시당하고 사느니 차라리 내 눈을 멀게 해버리겠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옆에 있는 붓대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야 맙니다.
그 때부터 그는 화가에게 목숨과도 같은 한쪽 눈을 버리고 애꾸눈이 되어서 전국을 유랑하며,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그리고 싶지 않을 때는 죽어도 그리지 않는 자유로운 화가로 살아갑니다.
바로 한국의 반고흐라 불리우는 최북 입니다.
조선의 아웃사이더 화가 |
북자를 둘로 쪼갠 칠칠을 자로 삼아 스스로를 '칠칠이'라고 하였고 최북의 호는 호생관으로 '붓 한 자루에 의지해 먹고 산다'는 의미 입니다.
유별난 그의 기행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광생'또는 '미치광이' 라 불렀지만 단원 김홍도, 심사정, 정선 등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화가 였습니다.
그림 한 점 그려서 팔아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고 돈이 생기면 술과 기행으로 세월을 보내며 김명국, 장승업과 함께 조선 3대 기인 화가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예술가의 혼을 팔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을 알아주는 이가 있으면 동전 몇 닢에도 선뜻 그림을 넘겨주었으나, 붓 솜씨를 트집 잡는 세도가들에게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자신의 눈을 찌를망정 절대로 그림을 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북의 그림 중에는 '춘화도'가 없습니다.
진경산수화 최산수 |
최북은 특히 산수화를 잘 그려서 '최산수'라고도 불리웠고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숭상하는 당시의 화풍을 비판하고 조선의 산천을 찾아 직접 화폭에 담았습니다.
현재 최북은 작품은 풍설야귀인도를 비롯하여 표훈사도, 공산무인도 등 약 90여 점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풍설야귀인도 |
최북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풍설야귀인도'는 자신의 일생을 투영해 놓은 제2의 자화상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붓 대신에 손가락이나 손톱에 먹물을 묻혀서 그리는 '지두화'로 알려진 풍설야귀인도
눈보라 속에서 죽어갈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최북이 폭설에 사망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림 속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거칠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에서 최북의 거침없는 저항적 성격과, 고단하고 서러웠던 그의 인생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술 한잔에 팔기도 했던 최북 그림의 가치는?
최북의 '공산무인'의 경우 2014년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리움미술관이 인수했습니다. 정확한 인수 가격은 알수 없지만 당시 단원 김홍도의 공상무인보다 더 가격이 높다고 알려졌는데요.
단원 김홍도의 '서호방학도'가 1억5000만원-3억원, 겸재 정선의 ‘고사인물도’가 8000만원에서 2억원 이므로 최북의 다른 작품 역시 수천만원 이상의 추정가를 기록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