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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천재 존 몬터규!! 레반무어 강도사건의 진실은?, 1930년대 OJ심슨사건

홍부반장 2020. 2. 13. 14:39

이번 포스팅은 1930년대 판 'OJ심슨 사건'이라 불리우는 미국 골프천재 강도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풋볼 마니아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OJ심슨사건!!

 

 

1994년, OJ 심슨은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남자친구 로널드 골드먼의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었으나 이른바 드림팀이라 불리우는 변호인단을 구성하며 무죄판결을 받아 냈습니다.

 

 

하지만 니콜의 부모는 OJ심슨이 자기 딸을 죽인 범인이라고 주장하며 850만 달러의 피해배상을 청구해 형사사건으로는 무죄, 민사사건으로는 배상하라는 사실상 유죄판결을 받은 전대미문의 미제사건 입니다.

 

 

그 후 미국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판결이 나올 때마다 OJ심슨사건을 들먹였습니다. 하지만 Oj심슨사건이 있기 60여년전인 1930년대, 이미 원조 OJ심슨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 골프천재라 불리우던 "존 몬터규 강도사건" 입니다.

 

 

 

영화 '화이트크리스마스"로 잘 알려져 있는 가수겸 영화배우 '빙크로스비'

 

 

빙 크로스비는 엄청난 골프광으로 평소에 골프를 하다가 그린 위에서 영원히 잠드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정도 였습니다. ( 실제로 그는 1977년 10월14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한 골프장에서 퍼트를 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1937년 6월10일, 빙 크로스비는 뉴욕에서 절친 존 몬터규와 내기골프를 했습니다.

 

1905년 시러큐스에서 태어난 존 몬터규는 여덟 살 때부터 골프클럽에서 캐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골프에 입문, 단순한 아르바이트 였지만 독학으로 골프기술을 완벽하게 연마하였고 골프강습까지 하였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존 몬터규에 대해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평하였습니다.

 

심지어 '존 몬터규'가 출장하지 않은 대회의 우승자에게 당신을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할 정도 였습니다.

 

골프천재 존 몬터규와 절친인 헐리우드 스타 빙크로스비의 골프시합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빙 크로스비는 몬터규로부터 핸디를 5개나 받았으며 파4홀에 이르러 아주 ‘특별한 제안’을 했습니다.

 

“나는 골프클럽을 사용하겠지만, 자네는 클럽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볼을 치면 어떨까?”

 

 

기발한 제안에 몬터규는 야구배트, 삽, 흙고르개 등을 이용하여 게임을 진행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조간신문에는 ‘크로스비, 배트와 삽과 흙고르개에 참패’ 라는 제목의 기사가 사진까지 곁들여져 일제히 실렸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신문에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신문을 본 뉴욕 주 웨스트코스 경찰서의 두 경찰관이 신문기사 속 몬터큐의 사진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사내, 수배사진 속 인물과 너무나도 닮지 않았나?”, “꼭 닮았네그려. 당장 사건이 벌어진 에섹스카운티 경찰서에 알리세!”

 

 

수배전단 속 범죄자는 레반무어라는 강도사건의 용의자로 7년 전인 1930년 8월5일, 조이에 있는 조그마한 잡화점에서 물건과 현금 800달러를 훔쳤으며 '매트코프'라는 사람을 폭행하여 시력을 잃게 만들었던 흉악범이었습니다.

 

당시 범인은 총 4명이었으며 문제의 레반무어가 주모자 격이자 폭행을 가한 당사자 였습니다. 범인들은 두 대의 차에 나눠 도망갔으며 이 중 순찰차에 쫓기던 한 대가 뒤집어지면서 범인 가운데 한 명인 존 셀리가 사망했고 윌리엄 마틴이 체포되었습니다.

 

뒤집어진 차 안에서 레반 무어 명의의 운전면허증, 보스턴백, 그의 주소가 적힌 편지, 버팔로 야구팀에서의 그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신문기사 스크랩, 17개의 골프클럽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존 몬터규가 흉악범 레반무어?

 

전화를 받은 시카고의 카운티서 보안관은 레반무어의 지문, 사진, 필적을 뉴욕으로 보냈고 뉴욕의 골프클럽하우스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몬터규, 과거의 강도사건으로 체포되다!’라는 쇼킹한 뉴스가 보도되자 그의 골프친구이던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하여 66인의 저명한 영화배우, 감독, 작가가 주지사에게 몬터규 체포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대스타들이 매스컴에 나와 한입으로 “그는 절대로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변호함으로써 언론은 그를 ‘비극의 왕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재판에서 그는 존 몬터규가 가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강도사건과는 무관하다 주장하였습니다.

 

재판은 장장 17회에 걸쳐 열렸으며 존 몬터규 측 증인으로 클라크 게이블, 빙 크로스비를 필두로 열 손가락을 넘는 거물급 할리우드 스타가 나와 배심원에게 무고함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수수께끼 같은 몬터규의 정체가 점차 밝혀지기 시작했고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가 존 몬터규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유죄가 확실히 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레반 무어(존 몬터큐)는 단지 친구에게 차를 빌려줬을 뿐 자신은 오히려 피해자라는 주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꾸지 않았고 결국 전 미국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순간 재판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피해자측은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눈이 멀어 진실을 놓치고 말았소!” 라며 고함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신문들은 할리우드 스타가 돈을 각출해서 산 두 명의 변호사를 두고 “떨어지는 단두대의 칼날도 도중에서 멈추게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라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사건 이후 존 몬터규는 토너먼트 대회에 출전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몬터규를 냉대했고 때문에 대회를 기피하고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클럽에 틀어박혀 지내다 1972년 5월29일, 라디오시티의 조그만 방에서 존 몬터규는 의자에 앉은 채로 숨을 거뒀습니다.

 

참고로 시러큐스에 있는 동생과 두 명의 누이는 시신을 인도받지 않았고 매장절차도 거절하였기 때문에 옛 친구인 사진작가 아더 애덤스가 시신을 거두어 흙으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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