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땅 '노르웨이' 저 멀리 북유럽의 한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있습니다.
월드스타 '싸이'보다도 유명하며 심지어 노르웨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남자!! 바로 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 씨 입니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노르웨이 사람들은 김대중을 '라면왕이 태어난 나라의 대통령'으로 이해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르웨이의 첫번째 한국인
한국전쟁 중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이철호씨는 전쟁 중 폭격으로 큰 부상을 입어 노르웨이군 야전병원에 실려갔으며, 한국 내에서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1954년 4월 경 부상을 치료하기 위한 난민으로 노르웨이로 갔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불과 17살이었으며 노르웨이에 건너간 첫번째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배고픈 청년 이철호 요리사가 되다
혼자뿐인 이국땅에서 이철호씨는 호텔 벨보이, 주방 보조, 구두닦이 등을 하며 생활을 하였으나 배고픔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식당에서 일하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배가 고파도 식당에서 일하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 관광호텔에 조리 견습생으로 시작을 하였고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6개월만에 요리를 배울 수 있게 되었으며 60년대 중반에는 독일 뒤셀도르프 지방에서 노르웨이식 뷔페 식당을 열어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 식당 프랜차이즈 회사의 중간관리직으로 일하다 1987년 회사가 덴마크의 한 기업에 매각되자 이철호 역시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사업가로 변신
1970년대 이철호는 인삼차 수입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했습니다. 그리고 인삼가루를 빵에뭍힌 'Mr.Lee의 인삼빵'을 만들기도 하였고 '발가락 양말'을 수입했다가 수천개의 재고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철호씨는 우연히 한국라면을 맛본 후 인스턴트 라면이 없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개발하기로 마음 먹었고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를 가지고 한국의 유명 라면회사 연구소를 방문해서 연구진과 함께 스프를 개발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컵라면이 바로 미스터 리(Mr. LEE)라면 이었습니다.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한때 미스터 리(Mr.lee) 라면은 노르웨이 현지 시장에서 95%의 점유율을 보이며 전 노르웨이의 '라면왕'으로 등극, 노르웨이에서는 '미스터 리'가 '라면'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노르웨이라면 미스터리 라면
노르웨이에서 판매하는 미스터리 라면은 닭고기와 소고기맛 두가지가 있는데 빨간색이 소고기맛의 매운라면 입니다.(한국인에게는 안맵게 느껴질 정도) 닭고기맛은 맑은 닭곰탕 국물이 생각나는 맛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