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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시험 거벽!! 조선시대 코디네이터, 대리시험, 과외선생

홍부반장 2019. 3. 9. 13:07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코디네이터가 있었다?

 


'재수는 기본, 삼수는 선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 수험생들은 극심한 입시 경쟁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는 '입시 지옥'에 빠지게 된 걸까요?

 

그 역사는 아주 아주 위로 거슬러 올라 조선시대에는 과거제도까지 올라갑니다.

 

 

3년에 1번 총 33명을 뽑은 과거시험은 최소5등 안에 들어야 고위관료승진이 가능했으며 일반 양인(평민)도 과거시험을 통해 양반이 될수 있었던 시험이었습니다.

 

 

때문에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는 전국에서 10만명의 인파가 응시를 으며 과거급제까지 보통 25~30년 준비기간과 돈이 필요했기에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해 줄 수 있는 경제력이 필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제도와 관련된 부정행위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바로 거벽,(巨擘),사수(寫手),선접(先接)꾼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팀으로 이루어져 응시자의 부정행위를 도와주었습니다.

 


 

먼저 선접꾼은 시험장 내 좋은 자리를 잡는 사람, 거벽은 답을 알려주는 사람, 사수는 거벽의 문장을 필사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시험장 문이 열리면 선접꾼이 자리를 잡습니다. 이때 서로 좋은 자리를 어등려 싸움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당시 과거는 ‘선착순 입장’이었으므로 일찍 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응시인원이 너무 많다 보니 시험문제가 걸리는 곳에 가까운 곳 자리, 답안지를 빨리 낼 수 있는 자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단 며칠 만에(때로는 하루 만에) 수만 장의 답안지를 일일이 채점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합격자들이 처음 낸 답안지 수백 장 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선접꾼이 자리를 잡으면 거자(응시생)가 들어와 앉습니다.

 


이후 문제가 올라오면 거벽이 문제를 풉니다. 대놓고 책을 보기도 했고 사수와 상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 풀고 난후 거벽이 답을 읊으면 사수가 답안지에 받아적는 것 입니다.

 

거벽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족집게 과외선생 또는 입시코디네이너 입니다. 지금과 다른점이라면 조선의 거벽은 대리시험까지 치러준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사수는 그렇다 치고, 거벽은 왜 스스로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과거에 급제를 한들 가난한 양반이나 서얼 출신의 경우에는 출세가 어려웠던 탓에 과거 급제보다 거벽으로 돈을 버는 것을 택했던 것 입니다.

 

 

거벽, 선접꾼, 사수 이들은 조선의 타락을 보여줬던 과거시험의 사생아들로 1894년 과거를 폐지하면서 함께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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