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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정충신 장군!! 포도대장이 된 노비

홍부반장 2018. 12. 15. 15:55

이번 포스팅은 노비출신으로 장군까지 된 충무공 정충신 장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름대로 살다 간 인물

 

정충신은 조선 왕조 500년에서 충무공 칭호를 받은 9인 중의 한명으로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미천한 노비에서 명장의 사랑받는 심복이 되었다가, 왕의 명령으로 신분이 상승 결국 입신양명까지 한 정충신은 마치 소설속 주인공 같은 실존인물이었습니다.

 

 

이름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정충신 장군의 이야기!!

 

정충신은 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7세 때 당시 광주목사였던 권율의 노복으로 민첩하고 영리해서 권율에게 총애받았습니다.

 

 

 

나라를 구한 소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권율의 장계를 평안도 의주에 피신 중인 선조에게 찾아가 전하는 막중한 임무에 자원을 하였고 정충신은 광주에서 의주까지 일본군 점령지를 혼자서 돌파했습니다.

 

장계를 성공적으로 전달한 정충신은 어명으로 면천이 되어 평민이 되었고, 이후 무과 시험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무관으로 임명,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되었습니다.

 

 

광해군 시절에는 사신 자격으로 명나라를 방문, 여진족의 동태와 정세를 파악하는 역할을 하였고 1608년 조산보 만호직에 임명되어 무관으로 활동했습니다.

 

 

 

1618년 스승인 백사 이항복과 함께 유배를 떠나기도 하였지만 1621년에는 만포 첨사가 되어 국경 수비를 맡았고,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면서 외교 전문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최전방의 무관이면서도 상당한 지식인이었으며, 외교와 첩보에도 밝았기 때문에, 광해군 시절에는 명 - 청 세력의 동향을 조정에 알리는데 공헌했습니다.

 

이괄의 난과 정충신

 

인조반정 때도 묵묵히 최전방에서 업무를 수행한 정충신은 이괄의 난이 발발하자, 이괄이랑 친하다는 이유로 조정으로부터 의심을 받았으나 남이흥과 함께 2천명의 병력으로 야밤에 숨어들어서 이괄 군을 도발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반역자인 이괄의 친우였음에도, 그를 제압한 공로가 있었으나 죽는날까지 인조 정권에서 깊은 신뢰를 받지 못했습니다.

 

1633년 조선이 청나라와 단교하는 것에 반대하였다가 충청도 당진으로 귀양을 가기도 하였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병세 악화로 관직에서 은퇴, 그 해 5월,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충남 서산에는 충무공 정충신 장군을 모신 사당 진충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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