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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작전!! 실미도 684 부대 난동사건

홍부반장 2021. 3. 16. 09:26

이번 포스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지키지 못한 약속-오소리 작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소리작전이란 1968년 창설된 실미도 684부대의 작전명 입니다.

 

1968년 1월 21일, 소위 '김신조 사건'으로 알려진 1.21사태가 일어났는데 당시 북한이 무장 게릴라를 보내 당시 국가원수였던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사건 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에 분노하여 그 복수(김일성 암살)를 계획하게 되었고 그렇게 당시 중앙정보부 주도로 창설된 부대가 바로 실미도 684부대 입니다.(참고로 1968년 4월에 창설되어 684부대 입니다.)

 

 

한 마디로 실미도 684부대는 김일성 암살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북파공작원을 양성시키기 위한 특수부대 였습니다.

 

 

그런데 실미도684부대는 다른 군부대와 많이 달랐습니다.

 

 

실미도 684부대는 군인이 아닌 사형수와 흉악범 등의 전과자 위주로 구성된 부대 였습니다.

 

 

이들은 3년여 동안 가혹한 훈련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지만 김일성 암살작전(오소리 작전)이 성공하게 된다면 사형 및 잔형면제라는 포상이 있었기에 이들은 그 모든 훈련을 마다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훈련중에 사망한 훈련병도 다수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무려 3년 4개월동안 출동 명령만 기다린 실미도684부대의 오소리작전!!! 하지만 오소리작전은 끝내 무산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파 임무는 취소되었고 이후 정부는 이들의 존재가 외부에 공개될 것을 우려해, 기간병들에게 훈련병들을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 정보를 먼저 알게된 실미도 훈련병들은 당시 같은 부대에 있던 기간병 24명 가운데 18명을 살해 (당시 출장 나가있던 김방일 소대장과 병 5명 등 총 6명이 살아남았으며, 이들은 화장실이나 숲 속에 숨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어선에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이들은 실미도를 탈출한 후 인천에서 시내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였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청와대!! 이들은 박정희를 만나 담판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청와대로 향하던 중 육군에게 저지 당하며 총격전에 휘말렸고 결국 포위망을 돌파할 가능성이 없어지자 대부분의 부대원이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하였고 단 4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생존자 4명도 1972년 3월 사형당했습니다.

 

 

정부는 이 사건을 북한 무장간첩이 서울에 침입해 군인들 간의 교전 끝에 사살했다는, 북한 소행의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실미도'가 2003년 개봉해 국민의 관심을 모으면서 사건 진상 규명 작업이 이뤄졌으나, 이후 더 이상 규명 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건은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습니다.

 

 

실미도 684 부대 창설 멤버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방일 소대장은 이후로도 공군에서 계속 복무하다 1990년 퇴역하였고 이후 684 부대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 지난 2005년 작고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실미도 사건 당시 훈련병 중 생존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 이 바로 소설 '실미도'를 집필한 소설가 백동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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