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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키작전!! 일등공신은 종군기자 마이클치니고와 마피아?

홍부반장 2020. 11. 5. 16:38

이번 포스팅은 2차 세계대전 연합군 승리에 시초가 된 '허스키 작전(Operation Husky)'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허스키작전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단행되었던 연합군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침공작전으로 연합군은 끝내 시칠리아를 장악하였습니다.



횃불 작전 종료 후, 다음 전투 장소를 정하기 위해 모인 연합군은 다음 전투장소로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를 동서로 양분할 뿐만 아니라, 만일의 경우 남부 유럽에 대한 상륙작전이 실시될 때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허스키 작전은 동부 전선의 독일군 견제와 더불어 이탈리아에 대한 압박을 견고히 한다는 부가적인 효과도 노릴 수 있었습니다.



1943년 7월 10일, 시칠리아에 상륙 한 미군과 영국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해상과 공중공격을 퍼 부었고 결국 허스키작전 개시 38일 후 1943년 8월11일, 독일군은 메시나를 거쳐 이탈리아 본토로 퇴각하였습니다.

 



이 작전에 숨은 일등공신이 둘이 있으니 첫번째는 바로 미3보병사단 소속의 종군기자 마이클 치니고 입니다.



알바니아계 미국인이었던 그는 1943년 7월10일 연합군이 점형한 이탈리아군의 참호 속에서 전화벨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 수화기를 단 마이크 치니고, 전화기를 건 주인공은 다름아닌 독일군 장군이었으며 그는 시칠리아의 현재 상황에 대해 물었습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연합군은 상륙하였는가?"


이탈리아어에 능통했던 마이클 치니고 기자는 장군의 질문에 연합군이 아직 상륙하지 않았다며 거짓보고를 하였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은 이탈리아 장군은 별 다른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으며 이는 결과론적으로 허스키작전 성공의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허스키작전 당일 기상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특히 시속 40마일의 강풍이 불어 공수사단의 경우 예정지에 착륙하지 못하는 등 6시간이나 늦게 상륙을 하였습니다.



만약 마이클 치니고가 아니었다면 이탈리아군은 시칠리아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지원군이 보내졌다면 연합군의 피해는 훨씬 많았을 것 입니다.



마이클치니고의 기지에 큰 성과를 거둔 허스키작전, 마이클은 작전 도중 부상을 입은 병력을 돕고 포로들의 심문에 통역을 한 공이 인정되어 미 윤국은로부터 은성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당시 시칠리아 전투에는 미국과 영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 프랑스 등 여러국가 참여하였은데 의외의 지원병력이 연합군의 침공을 보조하였으니 바로 이탈리아 마피아 세력이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시칠리아 마피아들은 파시스트 정권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에 동조하여 필요한 정보와 지원을 하였습니다.



연합군은 이탈리아 마피아의 정보를 바탕으로 시칠리아 서부전선을 공략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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