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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김성준!! 소매치기 출신 복서의 권투 동영상

홍부반장 2018. 3. 30. 12:22


이번 포스팅은 소매치기 출신으로 세계챔피언까지 오른 권투선수 김성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성준은 1971년 프로복싱에 데뷔한 후 7년만인 1978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고 3차 방어까지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1982년 7월 11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였습니다. 통산 전적 48전 28승(13KO)14패6무

 

링에서 투혼을 불사르다 간 근성의 복서 김성준 그는 한국의 하리케인이었다!!

 

김성준은 1953년 부산 대신동에서 5남매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제법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해운업을 하던 부친의 사업실패와 죽음으로 집안이 몰락하였고 궁핍한 생활에 실증이 난 그는 나이 14세에 가출을 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다 국내최대의 소매치기 조직 '김봉호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청소년시절을 소매치기 생활을 하며 보낸 김성준은 18살이 되던 해에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권투에 매료되었고 결국 남영동 동신체육관의 김준호관장 밑으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김선수와 절친했던 전세계챔피언 홍수환은 김성준선수가 동신체육관을 처음 찾아왔을때 곱상한 외모와 오메가 시계를 차고 있어(소매치기 한 것) 어느부잣집 자제로 알았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데뷔전에서 판정패 하였지만 그 후 승승장구하며 11전째인 75년 8월 당시 한국챔피언 문명안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프로데뷔 4년만에 한국챔피언이 되며 복싱선수로서의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챔피언에 오른후 김성준선수는 과거 자신의 소매치기 전력에 대해 자를 하고 과거를 청산하려고 애썼지만 한번 발을 들여놓은 소매치기 세계에서 완전히 발을 빼기란 생각만큼 쉽지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그를 후원해온 같은 소매치기조직원을 은신시켜준 혐의로 김선수는 76년 2월 8일 서울지검 김진세검사에 의해 범죄단체조직 및 상습절도혐의로 구속 수감되었고 한국챔피언 타이틀마저 박탈당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를 아끼던 홍수환 ,오영호 등 지인들의  호소로 그를 붙잡아 넣은  담당검사에게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복싱에만 전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구속수감된지 66일만에 1년 징역 2년 집행유예로 풀려나 복서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김선수를 담당하였던 김진세검사는 김성준선수의 복싱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복서로서이 길을 걷게 된지 약 1년 후인 77년 1월 김성준선수는 챔피언 리틀박을 일방적으로 몰아부친 끝에 짐념의 승리를 거두며 잃었던 한국챔피언 밸트를 다시 찾아왔고 78년 1월 29일 라이벌 정상일에 판정승을 거두고 동양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해(78년) 9월 30일 김선수는 태국의 복싱영웅 네트르노이.보라싱에게 도전하여 오른쪽 눈언저리를 찢기는 부상을 딛고 역전 KO승을 이끌며 마침내 대망의 세계챔피언에 되었습니다.

 

 

소매치기를 하던 검은 손이 영광의 손이 되던 날 그는 “나를 갑자기 영웅으로 만들지 말아 달라. 대신 내 어두웠던 과거도 들추지 말아달라” “건방지지만 불우 청소년에게 작은 희망이 되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풍운아

 

김성준 선수는 1982년 링을 떠난 뒤 미국 이민을 추진했었고 꽃가게, 자신의 이름 '준'과 '링'을 합성 '준스 링'이란 레스토랑을 열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과의 결별로 실어증까지 오면서 89년 2월 3일 저녁 10시 40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 5가 조양빌딩 6층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니 36세로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나이였습니다. 

 

당시 그의 점퍼속 명함 뒷면에 적힌 유서에는 "보잘것없고 가련하고 못배운 놈이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 오직 나는 마지막 사랑을 나의 목숨 보다 사랑했다." 고 쓰여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자살은 펀치드링크증후군 때문이었습니다.

 

펀치드링크증후군은 얼굴을 집중적으로 얻어맞은 복싱선수들이 머리에 충격이 쌓여 뇌세포가 손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장애나 사망에 이르는 현상으로 특히 김성준 선수는 난타전을 즐기는 전형적인 헝그리스타일의 파이터였습니다.

 

 

그의 경기를 보면 강펀치나 스피드 또는 월등한 기량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난타전을 전개했고 그래서 경기가 끝나면 늘 눈이 부어있거나 어딘가 찢겨져 있었습니다.

 

오랜 복싱선수생활로 인해 손상된 뇌신경에서 오는 우울증 등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만 것 입니다.

 

 

일본만화 '내일의 죠'의 허리케인를 연상시키는 투혼의 복서 김성준!!

 

불우했던 어린시절를 겪으며 권투를 통해 신분상승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듯 했지만 결국은 좌절하며 비운의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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