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엥나의 블로그

돌고래 피터!! 큰돌고래가 자살한 이유는? 본문

fun fun

돌고래 피터!! 큰돌고래가 자살한 이유는?

홍부반장 2020. 10. 29. 10:28

이번 포스팅은 아주 아주 특별하지만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여만 했던 큰돌고래 '피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60년대 우주개척과 함께 시작된 세티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외계 생명체를 찾는 작업을 통칭하는 것으로 우주과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주도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많은 기업들이 후원을 하였습니다.



머나먼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산다면 언젠가 평화롭게 조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시작된 세티프로젝트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외계인과 만나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순 없지 않은가?


바로 의사소통 문제 였습니다.




그래서 연구진들은 외계인과 인간의 의사소통법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위해 아주 특별한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돌고래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면 외계인에게도 가능하지 않을까?


1963년, 돌고래의 두뇌를 연구한 신경생리학자 존 릴리의 주도하에 카리브해의 세인트토머스섬 해안가에 하얀 이층집에서 인간과 돌고래(외계인)간의 의사소통법을 개발을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돌핀하우스’라고 불린 실험실에는 뉴기니 등 원주민 생활과 언어를 연구한 당대 최고의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 그리고 민간인 마거릿하우 로바트가 함께 하였습니다.


실험대상으로 삼았는데 암컷 ‘시시’와 ‘패멀라’ 그리고 갓 어른이 된 수컷 ‘피터’ 였습니다.


민간인 참여연구원이었던 마거릿 하우 러밧은 돌고래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특히 수컷 돌고래 피터를 중점적으로 교육 시켰습니다.


“원, 투, 스리….”(로바트)

“워억, 뚜익, 띠익….”(피터)


마치 유치원생에게 숫자를 가르치듯 로바트, 피터는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억양과 리듬이 따라했습니다.


아이들보다도 빠른 피터의 학습능력에 연구진들은 흥분을 했고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담대한 실험계획을 세웠습니다.


1965년 돌핀하우스 이층을 인간-돌고래의 공동생활 공간으로 개조한 것 입니다.



얕은 수심의 풀장에 책상, 전화기, 의자를 들여놓고 피터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 결과 피터의 언어능력은 급속도로 향상되었고 그와함께 러밧과의 친밀도도 깊어졌습니다.



피터는 그녀의 신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로바트의 무릎이나 다리, 손에 몸을 대고 비비며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진들은 처음엔 아래층의 암컷들에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갓 어른이 된 돌고래의 성적 욕망이 고개를 쳐들고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진들은 애써 끌어올린 친밀도와 언어능력을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손으로 돌고래의 성욕을 해소시켜주는 길을 택했습니다. 



큰돌고래 피터와 로바트간에 친밀도는 점점 높아졌으나 연구는 답보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연구에 진척이 없자 급기야 돌고래 피터에게 약물을 사용하였고 이 것이 알려지게되며 나사의 지원이 끊기면서 1966년 돌핀하우스의 돌고래 실험은 완전 종료되었습니다.


큰돌고래 피터는 미국 마이애미의 비좁은 건물로 옮겨졌는데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끔찍한 콘크리트 수조였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피터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돌고래는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의식적으로 호흡하기 해야 하는데 피터는 수면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큰돌고래 피터는 음울하고 고립된 물탱크에서 홀로 살며 러밧을 그리워하다 결국 숨을 쉬기를 거부한 것 입니다.


돌고래 피터의 자살 소식을 전해들은 러밧은 훗날 피터가 지내던 수족관을 매입 거기에 집을 짓고 피터를 생각하면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