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한국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감독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영화가 탄생 100년을 맞았습니다.
천만관객의 영화가 탄생이되고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며 봉준호, 박찬욱 감독 등 세계적인 감독도 탄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영화계는 여성 불모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여성이 주연인 영화도 드물며 여성 영화감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여성감독이 참여한 한국 상업영화는 연평균 5편(6.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70년여전 여성불모지인 영화계에 고무신과 한복 차림에 포대기로 아이를 둘러업고 영화판을 뛰어 다니던 여성감독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씨 입니다.
박감독의 영화와 인연은 대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영화평을 쓰면서 부터였으며 광복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조선영화사 광희동 촬영소에서 편집을 배우면서 영화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신경균 감독의 '새로운 맹세'에 스크립터로서 촬영 현장에 참여하였고 6·25전쟁이 일어나자 국방부 촬영대에 입대하여 뉴스촬영반에서 활동 하였습니다.
그리고 1954년 7월, 남편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 '미망인(未亡人)'을 촬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그녀 나이는 32살로 이제 한살이 막된 어린딸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박남옥감독은 어린 딸을 등에 업고 촬영에 임해야만 했습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 중반, 여성 감독에게 연출을 선뜻 제안하는 제작자가 없었기에 제작비를 언니의 도움을 받아 자체 조달하였고 제작비를 아끼려고 스태프들에게 직접 밥을 해먹여야만 했습니다.
아침부터 녹음실에 여자가 드나들면 재수 없다는 비아냥을 견디며 후반 작업을 했으며 영화상영을 위해 전국을 직접 다니며 배급까지 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박남옥 감독의 첫 영화 '미망인'
미망인은 6·25전쟁 중에 남편을 잃고 어린 딸과 살아가는 여성이 매력적인 청년과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영화로 박감독은 1950년대 중반에 급증한 전쟁 미망인의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섬세하게 묘사하였습다.
영화 미망인은 1955년 3월 말에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되었으나 아쉽게도 흥행에 실패하여 며칠만에 간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박감독의 첫영화 미망인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이혼 후 혼 자 양육해야 했던 어린 딸을 키우기 위해 영화계를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출판사에서 근무하면서도 퇴근 후에는 늘 충무로로 달려가 가난한 영화인들의 술과 밥을 사주는 등 여전히 영화에 대한 열망은 가득했습니다.
박감독은 70년대 중반, 딸이 미국 유학을 떠나자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미련을 뒤로하고 미국이민 길에 올랐고 2017년 4월 8일 9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살아생전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잊혀졌던 그녀 하지만 다행히 그의 생전 작품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를 계기로 박남옥 감독이 재조명되었으며 199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미망인'이 복원 상영되기도 하였습니다.
단 한 편의 영화만을 남기고 영화계에서 잊혀졌던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 늦게나마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 입니다.